평생을 가족은 안중에도 없고 일과 친구들에만 빠져 살았던 노인 얼.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여기며 심지어 딸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는다. 그렇게 가족들과 오랫동안 얼굴도 보지 않고 살다가 운영하던 화원이 망하는 바람에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된다.
당연히 가족은 그를 받아주려 하지 않고, 그는 가족을 되찾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약을 운반하는 일을 하게 된다. 큰 돈을 거머쥐게 된 그는 가족들에게 필요한 돈도 제공하고, 화원도 다시 열고, 지역 클럽을 여는데 큰 돈을 기증하기도 하며 다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평생 못할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결국 검거되어 감옥에 가지만 가족들은 그를 용서하고 감옥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꽃을 가꾸면서 인생을 마무리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연히 주인공인 노인 얼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기분이 이상한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1. 돈이 있으면 가족에게 인정받는다?
가족들이 그를 미워한 것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잘 나갈 때에도 힘들어하는 가족들에게 생활비 한푼 가져다주지 않다가 갈 곳이 없어지자 자신들을 찾아온 괘씸함 때문이었다. 그의 아내 매리는 죽기전에 "당신이 돈이 없었어도 우리는 결국 당신을 받아주었을 거야"라고 말한바 있다. 그러나 그가 큰 돈을 가지고 와서 손녀의 결혼식과 학비를 해결해 주지 않았다면, 훨씬 더 힘들고 굴욕적인 시간을 보내야 했을 거라는 것은 명확하다. 게다가 그 돈은 마약을 운반해서 번 돈이었다. 가족을 위해서 한 일이라면 범죄라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그렇게라도 돈을 벌어야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인가?
2.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앞서 말했듯이 그는 딸의 결혼식에도 친구들과 노닥거리느라 참석하지 않았다. 아버지 혹은 남편으로 인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가족의 용서와 사랑을 다시 얻어냈다. 손녀는 할아버지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을 보냈고, 아내는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다시 멋진 모습으로 돌아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을 용서하고 설레어한다. 마지막까지 완고했던 딸조차 엄마의 장례식을 지키는 아빠의 모습에 마음을 열고 용서한다. 가족간의 화해가 이렇게 쉬웠던가? 평생을 애증의 관계로 주인공 노인 얼을 기다려온 세 여자가 그가 작은 노력(심지어 그것은 모든 아버지가 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을 기울이기 시작하자 완전히 용서한다. 지구 반바퀴 뒤의 미국에서 익숙한 한국노래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들려오는 것 같은건 기분탓일까.
3. 결국 그가 치른 대가는 무엇인가.
그는 평생을 가족들에게 잘못해왔고, 마약운반이라는, 그것도 역사상 초유의 양과 횟수를 기록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런데 그가 치른 대가는 무엇인가.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원칙을 얘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적어도 '가족'이 이 영화의 핵심주제였다면, 가족에게 충분히 사죄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려냈어야 하지 않을까. 평생을 고생하고 기다리며 지옥을 오간 가족들을 돈과 미안하다는 말 한두번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용서하는 사람들로 그리기 전에 말이다. 그는 결코 가족들만을 위해 돈을 번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인정받았고, 젊은 여자들과 어울리며 평생 못해볼 경험들을 해봤고, 자기가 그토록 좋아하는 백합화원도 다시 열었다. 감옥에 들어갔지만, 결국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인중 하나로 늙어가며 죽음을 기다리게 되었다.
4. 세상 모든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위한 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영화 등으로 시대를 풍미했고, 2명의 부인과 2명의 동거녀, 8명의 자녀가 있다. 이제 88세인 그가 자신의 삶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한때는 사회적으로 정말 잘 나갔지만, 노년이 되니 쓸쓸하고 공허해서 문득 가족의 소중함이 떠오른, 그러나 막상 돌아가자니 염치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노인의 로망을 풀어낸 영화인 것이다. 그것을 감동대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영화라고 홍보하다니. 배신감마저 들 정도이다.
많은 미국 노인들이 이 영화의 여파로 마약운반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것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